Daily Bread Detail Page - 오늘의 양식 내용

오늘의 말씀

12/31/2021     금요일

성경읽기: 말라기 1-4; 요한계시록 22
찬송가: 234(통220)

크리스마스에 하루 더 가까이

“크리스마스가 끝난 게 믿어지지 않아요!” 딸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서운한 기분이 듭니다. 선물은 다 열어봤고 트리와 전구들을 치워야 합니다. 별로 할 일 없는 1월, 그리고 연휴 동안 늘어난 몸무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함께 찾아왔던 벅찬 기대감들이 갑자기 아득히 멀어진 것만 같습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정리하며 깨달았습니다. ‘지금이 몇 월 몇 일이든 다음 크리스마스에 하루만큼 더 가까워졌잖아.’ 그 이후로 나는 이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이면에는 일시적인 기념을 넘어서는 훨씬 더 중요한 영적인 실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가져다주신 구원과 그분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소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을 주목하여 기다리고 갈망하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나는 바울이 빌립보서 3:15-21에서 말한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비교합니다. 하나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세상적인 방식이며 (19절) ,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0절).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소망하는 바와 살아가는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하루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그 소망은 더 굳건해집니다.

오늘의 성구

빌립보서 3:15-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예수님과 그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소망들이 제 마음과 주의를 분산시킬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소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소망하며 사십니까? 예수님 안에서 당신이 품고 있는 소망은 이 세상에서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Daily Article

12/31/2021     FRIDAY

The Bible in One Year: MALACHI 1–4; REVELATION 22
Hymn: 234(OLD 220)

ONE DAY CLOSER TO CHRISTMAS

“I can’t believe Christmas is over,” my dejected daughter said.

I know how she feels: The aftermath of Christmas can feel dreary. Presents have been opened. The tree and lights must come down. Listless January—and, for many, the need to shed holiday pounds—awaits. Christmas—and the breathless
anticipation that comes with it—suddenly feels eons away.

A few years ago, as we were putting Christmas stuff away, I realized: no matter what the calendar says, we’re always one day closer to the next Christmas. It’s become something I say frequently.

But far more important than our temporal celebration of Christmas is the spiritual reality behind it: the salvation Jesus brought into our world and our hope for His return. Scripture talks repeatedly about watching, waiting, and longing for Christ’s
second coming. I love what Paul says in Philippians 3:15–21. He contrasts the world’s way of living—with “mind[s] set on earthly things” (V. 19) —with a lifestyle shaped by hope in Jesus’ return: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And we eagerly await a Savior from there, the Lord Jesus Christ” (V. 20).

The reality that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changes everything, including what we hope for and how we live. That hope is fortified by the knowledge that with every passing day, we’re indeed one day closer to Jesus’ return. ADAM R. HOLZ

Today's Reading

PHILIPPIANS 3:15–21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And we eagerly await a Savior from there, the Lord Jesus Christ. [ PHILIPPIANS 3:20 ]

Father, thank You for the hope that I have in Jesus and in His return. When lesser hopes compete for my heart’s affection and attention, help me to lift my eyes to You.

What are some of the things you hope for in this world? How do you think your hope in Jesus influences and affects the earthly things you long and hope for?

오늘의 말씀

12/30/2021     목요일

성경읽기: 스가랴 13-14; 요한계시록 21
찬송가: 484(통533)

금보다 귀한 것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 캘리포니아로 향했던 금사냥꾼 에드워드 잭슨은 1849년 5월 20일자 일기에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힘든 마차 여행을 비탄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부디 내 뼈를 여기 묻지 말고 가능하면 집으로 가져다 주시오.” 또다른 금사냥꾼 존 워커는 “이건 일생일대의 대박이야...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말아야지.”라고 기록했습니다.

사실 워커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와 목장일, 그리고 지역 정치인으로서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가족이 ‘앤티크 로드쇼’라는 미국 TV 프로그램에 나와 누렇게 색이 바랜 옛 편지들을 소개했을 때 그 편지들은 수천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그는 골드러시에서 정말 귀중한 것을 얻었네요. 바로 이 편지들 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워커와 잭슨이 좀 더 실제적인 삶을 유지하게 해준 지혜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이 지혜에 대해서 한 말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혜를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잠언 3:13, 18) . 지혜로운 선택은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습니다” (14절) . 왜냐하면 그것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절).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6-17절) .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혜를 굳게 붙잡고 화려한 꿈을 좇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길입니다.

오늘의 성구

잠언 3:1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잠언 3:18]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헛된 소망에 미혹될 때 제게 영감을 주셔서 더 현명한 선택으로 하나님의 복된 평안으로 돌아가는 지혜의 길을 가게 해주소서.

화려한 욕망을 좇는 삶을 산 적이 있습니까? 반면에 지혜로운 길은 당신을 어디로 데려다 줄까요?

Daily Article

12/30/2021     THURSDAY

The Bible in One Year: ZECHARIAH 13–14; REVELATION 21
Hymn: 484(OLD 533)

BETTER THAN GOLD

When gold seeker Edward Jackson set out for California during the Great Gold Rush in the US, his diary entry on May 20, 1849, lamented his grueling wagon journey, marked by disease and death. “O do not leave my bones here,” he wrote. “If possible let them lay at home.” Another gold-seeker named John Walker penned, “It is the most complete lottery that you can imagine . . . . I cannot advise any person to come.”

Walker, in fact, returned home and succeeded at farming, ranching, and state politics. When a family member took Walker’s yellowing letters to the American TV program Antiques Roadshow, they were valued at several thousand dollars. Said the TV host, “So he did get something valuable out of the Gold Rush. The letters.”

Even more, both Walker and Jackson returned home after gaining wisdom that caused them to take hold of a more practical life. Consider these words about wisdom from King Solomon, “Blessed are those who find wisdom. . . . She is a tree of life to those who take hold of her” (PROVERBS 3:13, 18) . A wise choice is “more profitable than silver and yields better returns than gold” (V. 14) —making wisdom more precious than any earthly desire (V. 15).

“Long life is in her right hand . . . and all her paths are peace” (VV. 16–17) . Our challenge, therefore, is to hold tight to wisdom, not shiny wishes. It’s a path God will bless. PATRICIA RAYBON

Today's Reading

PROVERBS 3:13–18
[Wisdom] is a tree of life to those who take hold of her. [ PROVERBS 3:18 ]

Heavenly Father, when I’m blinded by the lure of shiny wishes, inspire me to take hold of wiser choices, walking the path of wisdom back to Your blessed peace.

What shiny wishes have you been chasing in life? Where could the path of wisdom take you instead?

오늘의 말씀

12/29/2021     수요일

성경읽기: 스가랴 9:12; 요한계시록 20
찬송가: 80(통101)

사자, 어린 양, 구원자!

두마리의 위엄 있는 사자상이 뉴욕 공공 도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그 사자상은 1911년 개관 이후 자랑스럽게 그곳에 서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서관 설립자들을 기리고자 레오 레녹스와 레오 애스터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대공황 기간 동안 뉴욕시장인 피오렐로 라과르디아가 그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며 뉴욕 시민들이 보여주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했던 ‘투지’와 ‘인내’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여전히 투지와 인내로 불립니다.

성경은 고난 가운데 용기를 주는 살아 있고 힘센 사자를 묘사하는데, 이 사자는 다른 이름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천국 환상을 보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계획이 담긴 봉인된 두루마리를 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울었습니다. 그때 요한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요한계시록 5:5).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요한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때 나는 전에 죽임을 당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이... 보좌 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6절, 현대인의 성경) . 사자와 양은 바로 같은 분,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은 다스리는 왕이시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 이십니다. 그분의 능력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자비와 용서를 받아 영원하신 그분의 기쁨과 경이로움 속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요한계시록 5:1-7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5:5]

아름다운 구주시여, 영원토록 찬양해도 다 못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위해 생명까지 주셔서 영원히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이름 중 어떤 이름을 좋아합니까?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찬양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Daily Article

12/29/2021     WEDNESDAY

The Bible in One Year: ZECHARIAH 9–12; REVELATION 20
Hymn: 80(OLD 101)

LION, LAMB, SAVIOR!

Two stately stone lions watch over the entrance to the New York Public Library. Hewn from marble, they’ve stood there proudly since the library’s dedication in 1911. They were first nicknamed Leo Lenox and Leo Astor to honor the library’s founders. But during the Great Depression, New York’s Mayor Fiorello LaGuardia renamed them Fortitude and Patience, virtues he thought New Yorkers should demonstrate in those challenging years. The lions are still called Fortitude and Patience today.

The Bible describes a living, powerful Lion who also gives encouragement in trouble and is known by other names. In his vision of heaven, the apostle John wept when he saw that no one was able to open the sealed scroll containing God’s plan of judgment and redemption. Then John was told, “Do not weep! See,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 . . has triumphed. He is able to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 (REVELATION 5:5).

Yet in the very next verse, John describes something else entirely: “Then I saw a Lamb, looking as if it had been slain, standing at the center of the throne” (V. 6) . The Lion and the Lamb are the same person: Jesus. He’s the conquering King an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OHN 1:29) . Through His strength and His cross, we receive mercy and forgiveness so that we may live in joy and wonder at all He is forever! JAMES BANKS

Today's Reading

REVELATION 5:1–7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Root of David, has triumphed. [ REVELATION 5:5 ]

Beautiful Savior, I could praise You for all eternity and never come to the end of all that You are. Thank You for giving Yourself for me, so that I may live in Your love forever!

What’s your favorite name for Jesus? What aspects of His character make you want to praise Him most?

오늘의 말씀

12/28/2021     화요일

성경읽기: 스가랴 5-8; 요한계시록 19
찬송가: 212(통347)

위대한 지혜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의 아버지 존 크리소스톰은 “영혼의 상태를 다각도로 살피려면 목자에게 위대한 지혜와 천 개의 눈이 필요하다.” 라고 썼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이들을 영적으로 잘 돌보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에 관한 토론에서 이 말을 썼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치유를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많은 공감과 연민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주의를 줍니다. 왜냐하면 “큰 수술이 필요한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여 환부를 살짝만 도려낸다면 암은 그대로 있고 상처만 입히게 됩니다. 반면, 사정없이 환부를 다 도려내면 종종 환자는 고통을 못 이겨 다 내버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유다서도 이와 비슷한 복잡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거짓 선생들의 행실을 적나라하게 말하며 이들에게 잘못 인도된 사람들을 묘사하면서도 (1:12-13, 18-19) , 그런 심각한 위협에 대응할 때에도 거친 분노로 맞서기를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것으로 그런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20-21절) .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깊이 닻을 내릴 때에만 다른 이들을 적절한 완급과 겸손과 연민으로 도울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23절) .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안에서 그들이 치유와 안식을 얻도록 도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오늘의 성구

유다서 1:17-23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서 1:22-23]

사랑의 하나님, 악과 증오에 마주칠 때 똑같이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위협을 느껴 그것에 대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성령 안에서 굳게 세우는 것” (20절) 이 왜 중요할까요? 놀라운 지혜와 연민으로 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도운 사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Daily Article

12/28/2021     TUESDAY

The Bible in One Year: ZECH A RIA H 5–8; RE V EL ATION 19
Hymn: 212(OLD 347)

GREAT WISDOM

“The shepherd needs great wisdom and a thousand eyes,” wrote the beloved church father John Chrysostom, “to examine the soul’s condition from every angle.” Chrysostom wrote these words as part of a discussion on the complexity of caring well for others spiritually. Since it’s impossible to force anyone to heal, he emphasized, reaching others’ hearts requires great empathy and compassion.

But that doesn’t mean never causing pain, Chrysostom cautioned, because “if you behave too leniently to one who needs deep surgery, and do not make a deep incision in one who requires it, you mutilate yet miss the cancer. But if you make the needed incision without mercy, often the patient, in despair at his sufferings, throws all aside . . . and promptly throws himself over a cliff.”

There’s a similar complexity in how Jude describes responding to those led astray by false teachers, whose behavior he describes starkly (1:12–13, 18–19) . Yet when Jude turns to how to respond to such grave threats, he doesn’t suggest reacting with harsh anger.

Instead, he taught that believers should respond to threats by rooting themselves even more deeply in God’s love (VV. 20–21) . For it’s only when we’re deeply anchored in God’s unchanging love that we can find the wisdom to help others with appropriate urgency, humility, and compassion (VV. 22–23) —the way most likely to help them find healing and rest in God’s boundless love. MONICA LA ROSE

Today's Reading

JUDE 1:17–23
Be merciful to those who doubt; save others by snatching them from the fire; to others show mercy, mixed with fear. [ JUDE 1:22–23 ]

God of love, when I’m faced with evil and hate, help me not to respond in kind but anchor myself in Your love.

Why is it crucial to “[build yourself] up . . . in the Holy Spirit” (V. 20) before you respond to perceived threats? What examples have you seen of great wisdom and compassion used in helping someone in great pain?

오늘의 말씀

12/27/2021     월요일

성경읽기: 스가랴 1-4; 요한계시록 18
찬송가: 406(통464)

하나님의 오른손

우리 집의 나이든 개 윌슨을 도와 잔디밭으로 내놓다가 더 어린 개 코치의 목줄을 잠시 놓쳤습니다. 허리를 구부려 목줄을 다시 잡았는데, 그 녀석이 토끼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쫓아가는 바람에 내 오른손에 잡혀 있는 목줄을 잡아채면서 내 약지가 뒤틀렸습니다. 나는 잔디밭에 쓰러지면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응급실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오면서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작가인데 어떻게 타자를 치죠? 또 어떻게 일상을 처리해야 하나요?” 때때로 그러시듯 하나님은 그날도 내가 매일 읽는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1:13) . 나는 그 말씀이 나온 맥락을 훑어보았습니다. 그 부분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던 유다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오른손으로 상징되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하시고 힘과 도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절) .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의 백성들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17:7;98:1).

회복하는 몇 주 동안 나는 구술을 이용한 컴퓨터 원고 작성, 왼손으로 집안 일과 몸단장하기 등을 배우면서 하나님이 힘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부터 다쳐서 도움이 필요한 우리의 오른손까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우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오늘의 성구

이사야 41:8-13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이사야 41:13]

치유하시는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다치고 힘없는 제 손을 붙드시고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 과거에 어떻게 그분의 도움을 경험하셨습니까?

Daily Article

12/27/2021     MONDAY

The Bible in One Year: ZECHARIAH 1–4; REVELATION 18
Hymn: 406(OLD 464)

GOD’S RIGHT HAND

I helped my elderly dog, Wilson, out to the grass and in the process, I released the leash of our younger dog, Coach, for just a minute. As I bent to pick up Coach’s lead, he spied a bunny. Off he went, ripping the leash from my right hand and corkscrewing my ring finger in the process. I fell to the grass and cried out in pain.

After returning from urgent care and learning I’d need surgery, I begged God for help. “I’m a writer! How will I type? What about my daily duties?” As God sometimes does, He spoke to me from my daily Bible reading.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takes hold of your right hand and says to you, Do not fear; I will help you” (ISAIAH 41:13) . I scanned the context, which indicated that God’s people in Judah, to whom Isaiah was communicating His message, enjoye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Him. He promised His presence, strength, and help through His own righteous standing, symbolized by His right hand (V. 10) . Elsewhere in Scripture, God’s right hand is used to secure victories for His people (PSALM 17:7; 98:1).

During my weeks of recovery, I experienced encouragement from God as I learned to dictate on my computer and trained my left hand in household and grooming functions. From God’s righteous right hand to our broken and needy right hands, God
promises to be with us and to help us. ELISA MORGAN

Today's Reading

ISAIAH 41:8–13
I am the Lord your God who takes hold of your right hand and says to you, Do not fear; I will help you. [ ISAIAH 41:13 ]

Healing God, I need Your help! Please use Your righteous right hand to take hold of my broken, weary hands and help me, I pray.

How do you need God’s help today? How have you experienced His help in the past?

오늘의 말씀

12/26/2021     주일

성경읽기: 학개 1-2; 요한계시록 17
찬송가: 218(통369)

때맞은 해결

사이먼과 제프리 사이의 상처가 해결이 안 된 채로 몇 년이 지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한 사이먼의 노력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프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이먼은 케냐의 “오지”로 가서 제프리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사이먼은 그날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모든 일이 어떻게 되어갈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난 후, 우리는 마음을 열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그 순간을 나누면서 함께 기도했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사이먼과 제프리가 서로 좀 더 일찍 화해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고통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21-26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해결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 같이 갈라서게 만드는 분노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22절) . 더 나아가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준비 과정입니다 (23-24절) .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얼른 화해하도록 하여라” (25절, 새번역) 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은 우리가 화해를 위해 더 일찍 노력할수록 모두에게 더 좋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관계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교육 현장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을 나누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평강의 왕” (이사야 9:6) 이신 예수님을 대표하는 자인 우리가 먼저 우리와 해결되지 않은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5:21-26
너를 고발하는 자와 급히 사화하라 [마태복음 5:25]

하나님 아버지, 제 삶의 어디에 관계의 균열이 있는지를 아십니다. 해결을 시도하기에 게으른 저를 용서하시고, 제게 힘주셔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소서.

먼저 다가가 관계를 원만히 풀어야 할 사람이 혹시 생각나십니까? 그 일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Daily Article

12/26/2021     SUNDAY

The Bible in One Year: HAGGAI 1–2; REVELATION 17
Hymn: 218(OLD 369)

TIMELY RESOLUTION

The unresolved hurt between Simon and Geoffrey had persisted for years, and Simon’s attempts to reenter the relationship had been resisted. Upon hearing the news of the death of Geoffrey’s mother, Simon traveled “up country” in Kenya to attend her funeral service. Simon reflected on their encounter: “I had no expectations at all in terms of how the whole thing would turn out, [but] after the service, we opened up and had a fruitful talk. We hugged, shared the moment, prayed together, and planned to
meet again.” If only Simon and Geoffrey had been able to reconcile earlier, so much ongoing pain could have been avoided.

The words of Jesus in Matthew 5:21–26 help to put unresolved relational tensions in perspective. The anger that can lead to such rifts is a serious matter (V. 22) . Furthermore, getting things in order relationally is a fitting prelude to worshiping God (VV. 23–24) . The wise words of Jesus to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V. 25) remind us that the sooner we do what we can to work toward reconciliation the better for all.

Relationships are risky; they demand work—in our families, in the workplace, in educational settings, and among people who share our faith in Christ. But as those who represent Him, the “Prince of Peace” (ISAIAH 9:6) , may we find ourselves going out of
our way to extend our hearts and hands to those with whom we have unresolved conflict. ARTHUR JACKSON

Today's Reading

MATTHEW 5:21–26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 MATTHEW 5:25 ]

Father, You know where the relational fissures are in my life. Forgive me for my slowness to attempt resolution. Give me the strength to take the next steps.

Who comes to mind when you think of someone you need to reach out to so that relational healing might begin? What’s keeping you from doing so?

오늘의 말씀

12/25/2021     토요일

성경읽기: 스바냐 1-3; 요한계시록 16
찬송가: 114(통114)

성탄절 아기

씨앗에서 향나무로 자라도록 하신 이가 하나의 배아로 생명을 시작하시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하늘의 별들을 만드신 이가 자궁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하늘을 채우시는 이가 오늘날 초음파의 작은 점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6-7) . 생각만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평범한 농촌 마을에서 목동과 천사들, 그리고 환한 하늘의 빛 가운데 가축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태어났던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그의 키가 자라며 더욱 사랑스러워져 가는 것을 보십시오. 소년 시절에는 어려운 질문들에 대답을 잘해 선생들을 놀라게 했고, 청년이 되어서는 요단강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승인을 받고, 광야에서 금식과 기도로 씨름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다음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나병환자들을 만지시며, 부정한 자들을 용서하시는 등, 세상을 바꾸는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동산에서 번민 속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 모습을, 자신이 붙잡힐 때 가장 가까운 벗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십시오. 침 뱉음을 당하며, 이 세상의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고 두 개의 나무판에 못 박히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하지만 잘 보십시오. 바위가 굴러가고 그분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무덤은 텅 비어 공허하게 된 것을! 그분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는 것을 (9절) , 그리고 그의 이름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차는 것을 보십시오 (10-11절).

초음파의 한 작은 점이 되신 이 별들의 창조자, 이분이 우리의 성탄절 아기입니다.

오늘의 성구

빌립보서 2:6-11
그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7]

예수님, 저의 죄를 사하시려고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지 않았다면 인생과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어떤 기도나 찬미시를 하나님께 드리시겠습니까?

Daily Article

12/25/2021     SATURDAY

The Bible in One Year: ZEPHANIAH 1–3; REVELATION 16
Hymn: 114(OLD 114)

CHRISTMAS CHILD

Imagine the One who made cedars spring from seeds starting life over as an embryo; the One who made the stars submitting Himself to a womb; the One who fills the heavens becoming what would be in our day a mere dot on an ultrasound. Jesus, in
very nature God, making Himself nothing (PHILIPPIANS 2:6–7) . What an astonishing thought!

Imagine the scene as He’s born in a plain peasant village, among shepherds and angels and bright lights in the sky, with the bleating of animals His first lullabies. Watch as He grows in favor and stature: as a youngster, astounding teachers with answers to grand questions; as a young man at the Jordan, getting His Father’s approval from heaven; and in the wilderness, as He wrestles in hunger and prayer.

Watch next as He launches His world-changing mission—healing the sick, touching lepers, forgiving the impure. Watch as He kneels in a garden in anguish and as they arrest Him while His closest friends flee. Watch as He is spat on and nailed to two
wooden posts, the world’s sins on His shoulders. But watch, yes watch, as the stone rolls away, an empty tomb ringing hollow, because He is alive!

Watch as He is lifted to the highest place (V. 9) . Watch as His name fills heaven and earth (VV. 10–11).

This Maker of the stars who became a dot on an ultrasound. This, our Christmas Child. SHERIDAN VOYSEY

Today's Reading

PHILIPPIANS 2:6–11
He made himself nothing 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 PHILIPPIANS 2:7 ]

Jesus, thank You for making Yourself nothing so I could be forgiven.

What would life and history be like had Jesus never been born? What prayer or poem can you offer God to thank Him?

오늘의 말씀

12/24/2021     금요일

성경읽기: 하박국 1-3; 요한계시록 15
찬송가: 412(통469)

평강의 왕

존은 감기가 폐렴으로 진행되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그의 어머니도 암 진단을 받고 같은 병원의 위층에 입원하게 되자 존은 어머니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며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탄 전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거룩한 밤”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평강이 그의 가슴 깊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는 사랑의 구주께서 태어나신 밤을 노래하는 가사를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온 땅이 주의 나심 기뻐하며 희망의 아침 밝아오도다.” 그 순간,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나신 “사랑의 구주”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했듯이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9:6) . 예수님은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음의 그림자가 둘린 땅에 사는 자들”에게 빛과 구원을 주시면서 이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6; 이사야 9:2 참조) . 예수님은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환난과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평강을 보여주시고 평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 병원에서 존은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면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경험했습니다 (빌립보서 4:7) .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그가 성탄절에 가족과 떨어져 무균실에 누워있을 때에도 그의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굳건히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평강과 소망의 선물을 받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성구

이사야 9:1-7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평강의 하나님, 제가 많은 일로 고민되고 방황할 때 하나님께로 돌이켜 평강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사야 9장 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 중 어느 이름이 당신에게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Daily Article

12/24/2021     FRIDAY

The Bible in One Year: HABAKKUK 1–3; REVELATION 15
Hymn: 412(OLD 469)

THE PRINCE OF PEACE

When John’s cold turned into pneumonia, he ended up in the hospital. At the same time, his mother was being treated for cancer a few floors above him, and he felt overwhelmed with worries about her and about his own health. Then on Christmas Eve, when the radio played the carol “O Holy Night,” John was flooded with a deep sense of God’s peace. He listened to the words about it being the night of the dear Savior’s birth: “A thrill of hope the weary soul rejoices, for yonder breaks a new and glorious morn!” In that moment, his worries about himself and his mother vanished.

This “dear Savior” born to us, Jesus, is the “Prince of Peace,” as Isaiah prophesied (ISAIAH 9:6) . Jesus fulfilled this prophecy when He came to earth as a baby, bringing light and salvation to “those living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MATTHEW 4:16; SEE ISAIAH 9:2). He embodies and gives peace to those He loves, even when they face hardship and death.

There in the hospital, John experienced the peace that passes all understanding (PHILIPPIANS 4:7) as he pondered the birth of Jesus. This encounter with God strengthened his faith and sense of gratitude as he lay in that sterile room away from his family at Christmas. May we too receive God’s gift of peace and hope. AMY BOUCHER PYE

Today's Reading

ISAIAH 9:1–7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 ISAIAH 9:6 ]

God of peace, when I’m anxious and fretting about many things, help me to turn to You and receive Your gift of peace.

How have you experienced God’s peace in the midst of a difficult situation? Which aspect of God in Isaiah 9:6 do you most need today? Why?

오늘의 말씀

12/23/2021     목요일

성경읽기: 나훔 1-3; 요한계시록 14
찬송가: 449(통377)

그들이 어떻게 알까

태국 북부에 있는 “개더링(모임) 교회”는 교파를 초월한 다국적 교회입니다. 최근 어느 주일에 한국, 가나, 파키스탄, 중국, 방글라데시, 미국, 필리핀,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온 신도들이 다 함께 한 허름한 호텔의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 같은 찬송가를 함께 불렀는데, 그 가사들은 그 상황 때문에 더욱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사람들을 함께 모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런 분이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안디옥에는 18 개의 다른 민족이 모여 살면서, 각 민족은 도시에 그들만의 구역을 만들어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처음 안디옥에 왔을 때에는 “유대인에게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1:19) .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곧 다른 신자들이 와서 “그리이스 사람 [이방인]들에게도 주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파하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20-21절, 현대인의 성경) . 그 도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반목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이 다민족 교회를 “그리스도인” 혹은 “작은 그리스도” (26절) 라고 불러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민족적, 사회적, 경제적 경계를 넘어 우리와 다른 그들을 껴안는 일은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우리에게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 일이 어렵지 않다면 우리가 그렇게 하는데 예수님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알아차릴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사도행전 11:19-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6]

예수님, 주님의 사랑으로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울까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Daily Article

12/23/2021     THURSDAY

The Bible in One Year: NAHUM 1–3; REVELATION 14
Hymn: 449(OLD 377)

HOW THEY’LL KNOW

“The Gathering” in northern Thailand is an interdenominational, international church. On a recent Sunday,believers in Jesus from Korea, Ghana, Pakistan, China, Bangladesh, the US, the Philippines, and other countries came together in a humble, thread-worn hotel conference room. They sang “In Christ Alone” and “I Am a Child of God,” lyrics that were especially poign­ ant in that setting.

No one brings people together like Jesus does. He’s been doing it from the start. In the first century, Antioch contained eighteen different ethnic groups, each living in its own part of the city. When believers first came to Antioch, they spread the word about Jesus “only among Jews” (ACTS 11:19) . That wasn’t God’s plan for the church, however. Others soon came who “began to speak to Greeks [gentiles] also, telling them the good news about the Lord Jesus,”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ed to the Lord” (VV. 20–21) . People in the city noticed that Jesus was healing centuries of animosity between Jews and Greeks, and they declared this multi-ethnic church should be called “Christians,” or “little Christs” (V. 26).

It can be challenging for us to reach across ethnic, social, and economic boundaries to embrace those different from us. But this difficulty is our opportunity. If it wasn’t hard, we wouldn’t need Jesus to do it. And few would notice we’re following Him. MIKE WITTMER

Today's Reading

ACTS 11:19–26
The disciples were called Christians first at Antioch. [ ACTS 11:26 ]

Jesus, may they know I’m a Christian by Your love.

Why is it so challenging to reach out to those who are different from you? What has Jesus provided to help you do so?

오늘의 말씀

12/22/2021     수요일

성경읽기: 미가 6-7; 요한계시록 13
찬송가: 475(통272)

가상 공간에서 함께 하는 것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 전역에 창궐함에 따라 보건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확산을 늦추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국민들에게 자가 격리 또는 자택 격리를 요청했습니다. 기업들은 가능하면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고, 어떤 사람들은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온라인을 통해서 교회 예배와 소그룹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서로 단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세계로서 새로운 형태로 함께 모이는 것을 실천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만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오래전에 이 개념을 골로새서에서 설명했습니다. 그가 골로새 교회를 직접 세우지는 않았지만 골로새 교인들과 그들의 믿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직접 그들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심령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다” (골로새서 2:5) 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건강상의 이유, 아니면 다른 이유들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항상 같이 할 수는 없지만 과학기술로 그 간격을 메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 공간에서의 어떤 형태의 만남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하는” 경험 (고린도전서 12:27) 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께할 때마다 우리는 바울처럼 서로의 견고한 믿음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골로새서 2:2) 를 온전히 알아가도록 서로 격려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구

골로새서 2:1-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골로새서 2:5]

예수님, 다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지 못할 때에도 주님이 저와 함께하여 주시니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다른 지체들과의 유대감을 어떻게 경험해 보셨습니까? 오늘 당신의 격려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Daily Article

12/22/2021     WEDNESDAY

The Bible in One Year: MICAH 6–7; REVELATION 13
Hymn: 475(OLD 272)

VIRTUAL PRESENCE

As the novel coronavirus marched across the globe, health experts advised increased physical distance between people as a means to slow the spread. Many countries asked their citizens to self-quarantine or shelter in place. Organizations sent employees home to work remotely if they could, while others suffered a financially debilitating loss of employment. Like others, I participated in church and small-group meetings through digital platforms. As a world, we practiced new forms of togetherness despite being physically disconnected.

It isn’t just the internet that lets us maintain a sense of connection. We connect to one another as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through the Spirit. Paul expressed this notion centuries ago in his letter to the Colossians. Though he hadn’t personally founded their church, he cared deeply for them and their faith. And even though Paul couldn’t be with them in person, he reminded them that he was “present with [them] in spirit” (COLOSSIANS 2:5).

We can’t always be with those we love for financial, health, or other practical reasons, and technology can help fill that gap. Yet any form of virtual connection pales in comparison to the “togetherness” we can experience as fellow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1 CORINTHIANS 12:27) . In such moments, we can, like Paul, rejoice in one another’s firmness of faith and, through prayer, encourage each other to fully “know the mystery of God, namely, Christ” (COLOSSIANS 2:2) . KIRSTEN HOLMBERG

Today's Reading

COLOSSIANS 2:1–5
Though I am absent from you in body, I am present with you in spirit. [ COLOSSIANS 2:5 ]

Jesus, thank You for being with me even when no other person can be present. Thank You for the connection You give me to others through the Holy Spirit.

How have you experienced a sense of connection with other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Who needs your prayers of encouragemen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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