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Bread Detail Page - 오늘의 양식 내용

오늘의 말씀

02/29/2024     목요일

성경읽기: .
찬송가: 202(통241)

레위기까지도

성경공부 모임에서 레위기를 공부하던 중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읽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많아요. 피부병에 관한 부분은 다시 안 읽을 겁니다.”

그러자 친구 데이브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그 구절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을 내가 알고 있어.” 데이브는 무신론자였던 그의 의사 친구가 성경을 전적으로 거부하기 전에 한번 성경을 직접 읽어 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레위기에서 피부병에 관한 부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는 전염되는 상처와 전염되지 않는 상처에 관해(13:1-46), 그리고 그 치료법(14:8-9)에 관해 놀랍도록 상세한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의 의학 지식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 모든 것을 알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 의사는 실제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 정보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지루한 부분이 있다는 것에 나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 들어있는 말씀들은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 그분에 대해 알게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바울 사도는 기록했습니다(디모데후서 3:16). 계속해서 읽어 나갑시다. 레위기까지도.

오늘의 성구

레위기 13:1-8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레위기 20:26]

성경의 어느 부분이 지루하거나 관련이 없어 보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런 부분의 가치를 잘 알게 될까요?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성경을 읽고 깨우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소서. 성경의 모든 부분이 제게 말씀하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29/2024     THURSDAY

The Bible in One Year: .
Hymn: 202(OLD241)

EVEN LEVITICUS

The topic was Leviticus, and I had a confession to make. “I skipped a lot of the reading,” I told my Bible study group. “I’m not reading about skin diseases again.”

That’s when my friend Dave spoke up. “I know a guy who believed in Jesus because of that passage,” he said. Dave explained that his friend—a doctor—had been an atheist. He decided that before he completely rejected the Bible, he’d better read it for himself. The section on skin diseases in Leviticus fascinated him. It contained surprising details about contagious and noncontagious sores (13:1–46) and how to treat them (14:8–9). He knew this far surpassed the medical knowledge of that day—yet there it was in Leviticus. There’s no way Moses could have known all this, he thought. The doctor began to consider that Moses really did receive his information from God. Eventually he put his faith in Jesus.

If parts of the Bible bore you, well, I’m with you. But everything it says is there for a reason. Leviticus was written so the Israelites would know how to live for and with God. As we learn more about this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is people, we learn about God Himself.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 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wrote the apostle Paul (2 TIMOTHY 3:16). Let’s read on. Even Leviticus. - TIM GUSTAFSON

Today's Reading

LEVITICUS 13:1–8
You are to be holy to me because I, the Lord, am holy. [ LEVITICUS 20:26 ]

What sections of the Bible bore you or seem irrelevant? How can you learn to recognize their value?

Father, teach me how to appreciate the Bible. Let every part speak to me.

오늘의 말씀

02/28/2024     수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20-22; 마가복음 7:1-13
찬송가: 366(통485)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내 믿음이 어디에 있을까? 내 마음속 깊은 곳마저 공허와 어둠뿐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누가 이 말을 했는지 알면 정말 놀랄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 입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쉼없이 돌본 사역으로 널리 알려져 모두의 사랑을 받은 마더 테레사는 50년이 넘도록 자신의 믿음을 위해 처절한 내면의 싸움을 치렀습니다. 이런 사실은 1997년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일기에서 추린 ‘오셔서 나의 빛이 되소서’ 책이 나오면서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느껴지거나 의심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힘이 드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많은 신실한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그런 의심을 짧게 또는 길게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신앙과 불신앙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역설적인 기도가 있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감사로 여겨집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의 아버지를 만나 (21절) 그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솔직하고 진실된 간구는 의심으로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지나게 될 아주 깊고 어두운 골짜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붙드신다는 것을 믿고, 그 의심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오늘의 성구

마가복음 9:14-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마가복음 9:24]

영적 삶에서 의심과 씨름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영적 힘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가끔 의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느끼기 위해 몸부림칠 때 저를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28/2024     WEDNES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20–22; MARK 7:1–13
Hymn: 366(OLD485)

“HELP MY UNBELIEF!”

“Where is my Faith?—even deep down right in there is nothing but emptiness & darkness. . . . If there be God—please forgive me.”

The author of those words might surprise you: Mother Teresa. Beloved and renowned as a tireless servant of the poor in Calcutta, India, Mother Teresa quietly waged a desperate war for her faith over five decades. After her death in 1997, that struggle came to light when portions of her journal were published in the book Come Be My Light.

What do we do with our doubts or feelings of God’s absence? Those moments may plague some believers more than others. But many faithful believers in Jesus may, at some point in their lives, experience moments or seasons of such doubts.

I’m thankful that Scripture has given us a beautiful, paradoxical prayer that expresses both faith and the lack thereof. In Mark 9, Jesus encounters a father whose son had been demonically tormented since childhood (V. 21). When Jesus said that the man must have faith (“Everything is possible for one who believes,” V. 23), the man responded,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V. 24).

This honest, heartfelt plea invites those of us who struggle with doubt to give it to God, trusting that He can fortify our faith and hold on to us firmly amid the deepest, darkest valleys we’ll ever traverse. - ADAM R. HOLZ

Today's Reading

MARK 9:14–24
Immediately the boy’s father exclaimed,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 MARK 9:24 ]

When have you wrestled with doubt in your spiritual journey? What spiritual resources helped you hold on to your faith?

Dear Father, sometimes I doubt. Please help me when I struggle to feel Your presence.

오늘의 말씀

02/27/2024     화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17-19; 마가복음 6:30-56
찬송가: 505(통268)

예수님이 멈춰 서실 때

직장 근처에 아파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상자 안에서 웅크리고 며칠째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그 고양이를 그대로 지나쳤지만 마침내 준이 보았습니다. 거리 환경미화원인 준은 버려진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는 이미 두 마리의 유기견을 데려다 살고 있었습니다.

준이 말합니다. “내가 유기동물을 돌보는 이유는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봅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나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들르실 때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자신을 관심 밖의 존재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앞다퉈 지나가던 그때에도 이 맹인을 찾아 돌보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외였습니다. 예수님은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 잊힌 한 남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신 예수님은 그 사람이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마음의 소원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41-42).

우리에게도 때로 소외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보다 더 중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목소리가 묻히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분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갈지 몰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멈춰 서실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18:35-43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누가복음 18:40]

예수님이 당신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들 앞에 “멈춰 서서” 구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격려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부를 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을 보게 된 그 맹인처럼 제 평생 주님을 따르며 찬양하게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27/2024     TUES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17–19; MARK 6:30–56
Hymn: 505(OLD268)

WHEN JESUS STOPS

For days, the sickly cat cried, huddled in a box near my work- place. Abandoned on the street, the feline went unnoticed by many who passed it by—until Jun came along. The street sweeper carried the animal home, where he lived with two dogs, which were former strays.

“I care for them because they’re the creatures no one notices,” Jun said. “I see myself in them. No one notices a street sweeper, after all.”

As Jesus walked toward Jericho on His way to Jerusalem, a blind man sat begging by the roadside. He felt unnoticed too. And on this day especially—when a crowd was passing through and all eyes were focused on Christ—no one stopped to help the beggar.

No one except Jesus. In the midst of the clamoring crowd, He heard the forgotten man’s cry.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Christ asked, and He received the heartfelt reply, “Lord, I want to see.” Then Jesus said, “Receive your sight; your faith has healed you” (LUKE 18:41–42).

Do we feel unnoticed at times? Are our cries drowned out by people who seem to matter more than us? Our Savior notices those the world doesn’t care to notice. Call to Him for help! While others may pass us by, He’ll stop for us. - KAREN HUANG

Today's Reading

LUKE 18:35–43
Jesus stopped and ordered the man to be brought to him. [ LUKE 18:40 ]

How would knowing that Jesus sees you change how you view yourself and your life? Who are those around you who might need to be noticed, and how can you “stop” to encourage them with the Savior’s love?

Dear Jesus, thank You for hearing me when I call to You. Like the blind man who received his sight, help me to follow and praise You all my life.

오늘의 말씀

02/26/2024     월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15-16; 마가복음 6:1-29
찬송가: 361(통480)

단잠

쌀의 머리 속엔 나쁜 기억들과 비난의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가슴에는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세례식 전날 밤이었는데 끊임없이 어두운 생각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았고 죄가 용서된 것도 알고 있었지만 샐의 영적 전투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손을 잡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쌀의 마음 속에서 곧 두려움이 물러가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기 전에 나눌 글을 썼습니다. 이전에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윗 왕도 그런 불안한 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노리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치며(사무엘하 15-17) “천만 대군이 [그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치고 있는”(시편 3:6) 것을 알고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1절)라고 탄식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던 다윗은 자신의 “방패”(3절)이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주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누워 곤하게 잠들”(5절, 새번역)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평안이 불안으로 바뀔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샐이나 다윗처럼 금방 단잠에 들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평안히 눕고 자며... 안전히 살”(4:8)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안식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구

시편 3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로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 기도를 올려드릴 때 소망과 평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Daily Article

02/26/2024     MON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15–16; MARK 6:1–29
Hymn: 361(OLD480)

SWEET SLEEP

Bad memories and accusing messages flooded Sal’s mind. Sleep eluded him as fear filled his heart and sweat covered his skin. It was the night before his baptism, and he couldn’t stop the onslaught of dark thoughts. Sal had received salvation in Jesus and knew that his sins had been forgiven, but the spiritual battle continued. It’s then that his wife took his hand and prayed for him. Moments later, peace replaced the fear in Sal’s heart. He got up and wrote the words he would share prior to being baptized—something he hadn’t been able to do. After that, he experienced sweet sleep.

King David also knew what a restless night felt like. Fleeing from his son Absalom who wanted to steal his throne (2 SAMUEL 15–17), he knew that “tens of thousands [assailed him] on every side” (PSALM 3:6). David moaned, “How many are my foes!” (V. 1). Though fear and doubt could have won out, he called out to God, his “shield” (V. 3). Later, he found that he could “lie down and sleep . . . because the Lord sustains [him]” (V. 5).

When fears and struggles grip our mind and rest is replaced by restlessness, hope is found as we pray to God. While we might not experience immediate sweet sleep as Sal and David did, “in peace [we can] lie down and . . . dwell in safety” (4:8). For God is with us and He’ll be our rest. - TOM FELTEN

Today's Reading

PSALM 3
I lie down and sleep; I wake again, because the Lord sustains me. [ PSALM 3:5 ]

What things are weighing on your heart and mind? What will it mean for you to truly surrender them to God through prayer?

Dear God, thank You for providing hope and peace as I lift my prayers to You.

오늘의 말씀

02/25/2024     주일

성경읽기: 민수기 12-14; 마가복음 5:21-43
찬송가: 69(통33)

행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디스커버’ 매거진에 의하면 우주에는 7해(7 뒤에 0이 20개 붙는) 개의 행성이 있지만 지구와 같은 행성은 단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천체 물리학자 에릭 잭리슨에 의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행성의 조건 중 하나는 온도가 딱 맞고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최적 상태”의 궤도를 도는 것이라고 합니다. 7해 개의 행성 가운데 지구가 바로 그 조건에 맞는 행성으로 보입니다. 잭리슨의 결론은 지구가 어쨌든 “운이 꽤 좋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신자들에게 우주가 존재하는 것은 행운의 여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골로새서 1:16)고 하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창조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창조주일 뿐 아니라, 바울의 말처럼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서 있어서”(17절) 이 세상이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게 인간이 존재하기에 꼭 알맞은 곳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그의 완벽한 지혜와 끊이지 않는 능력으로 유지하고 계십니다.

창조의 아름다움에 참여하여 그것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그것이 행운의 여신이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19절)을 소유하신 그리스도께서 목적을 가지고, 주권적으로, 권능과 사랑으로 만드신 것이라고
전하도록 합시다.

오늘의 성구

골로새서 1:15-20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7]

예수님이 자연 세계와 당신 개인의 세계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그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드리겠습니까?

사랑하는 예수님, 만물을 목적을 갖고 은혜롭게 창조하시고 유지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Daily Article

02/25/2024     SUN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12–14; MARK 5:21–43
Hymn: 69(OLD33)

NOT LUCK, BUT CHRIST

Discover magazine suggests that there are around 700 quintillion (7 followed by 20 zeros) planets in the universe, but only one like Earth. Astrophysicist Erik Zackrisson said that one of the requirements for a planet to sustain life is to orbit in the “Goldilocks” zone, where the temperature is just right, and water can exist. Out of 700 quintillion planets, Earth seems to be one planet where conditions are just right. Zackrisson concluded that Earth somehow had been dealt a “fairly lucky hand.”

Paul assured the Colossian believers that the universe existed, not because of Lady Luck, but because of the work of Jesus. The apostle presents Christ as the creator of the world: “For in him all things were created” (COLOSSIANS 1:16). Not only was Jesus the powerful creator of the world, but Paul says that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V. 17)—a world that’s not too hot and not too cold, but one that’s just right for human existence. What Jesus created, He’s sustaining with His perfect wisdom and unceasing power.

As we participate in and enjoy the beauty of creation, let’s choose not to point to the random activity of Lady Luck, but to the purposeful, sovereign, powerful and loving One who possesses “all [God’s] fullness” (V. 19). - MARVIN WILLIAMS

Today's Reading

COLOSSIANS 1:15–20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 COLOSSIANS 1:17 ]

What does it mean for you to know that Jesus is in control of the natural world and your personal world? How will you show your dependence on Him today?

Dear Jesus, I thank You for graciously and purposefully creating and sustaining Your creation.

오늘의 말씀

02/24/2024     토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9-11; 마가복음 5:1-20
찬송가: 351(통389

함께 하는게 더 낫다

쇠렌 솔케는 여러 해 동안 찌르레기의 사진을 찍으며 수십 만 마리의 새가 하늘에서 물결치듯 군무를 펼치는 놀라운 광경을 담아냈습니다. 이 경이로운 모습은 마치 지휘에 맞춰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이나, 거대한 검은 붓 놀림으로 만화경의 패턴이 그려지는 것을 올려다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덴마크에서는 이 찌르레기가 펼치는 광경을 “검은 해”(솔케의 멋진 사진집의 제목)라고 부릅니다. 가장 주목할 사실은 찌르레기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짝 뒤에 바짝 붙어 날기 때문에 어느 한 마리라도 삐끗하게 되면 커다란 재앙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찌르레기는 서로를 보호하려고 무리를 이룹니다. 매가 내려오면 이 작은 새들은 서로 빽빽한 대형을 이루어 단체로 움직이면서 혼자라면 쉽게 채어갈 수 있는 포식자를 물리칩니다.

우리는 혼자보다는 함께 있을 때가 더 낫습니다. 전도서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일으키려니와...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4:9-11)고 말합니다. 혼자 있으면 동떨어져 쉽게 먹잇감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위안과 보호를 못 받는 상태에 놓입니다.

그러나 동료가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 또 받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말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12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함께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오늘의 성구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전도서 4:9–10]

당신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더 약해집니까?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하나님, 늘 공동체 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24/2024     SATUR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9–11; MARK 5:1–20
Hymn: 351(OLD389

BETTER TOGETHER

Søren Solkær spent years photographing starlings and their breathtaking spectacle: murmurations,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starlings move in fluid motion across the sky. Watching this marvel is like sitting underneath an orchestrated, swirling wave or a massive, dark brushstroke flowing into a kaleidoscope of patterns. In Denmark, they call this starling experience Black Sun (also the title of Solkær’s stunning book of photographs). Most remarkable is how starlings instinctively follow their nearest companion, flying so close that if one were to miss a beat, they’d suffer mass calamity. However, starlings use murmurations to protect one another. When a hawk descends, these tiny creatures enter tight formation and move collectively, beating back a predator who’d easily pick them off if they were alone.

We’re better together than we are alone. “Two are better than one,” Ecclesiastes says. “If either . . . falls down, one can help the other up. [And] if two lie down together, they will keep warm” (4:9–11). Alone, we’re isolated and easy prey. We’re exposed without the comfort or protection of others.

But with companions, we give and receive help.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Ecclesiastes says,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V. 12). We’re better together as God leads us. - WINN COLLIER

Today's Reading

ECCLESIASTE S 4:9–12
Two are better than one . . . . If either of them falls down, one can help the other up. [ ECCLESIASTES 4:9–10 ]

How are you more vulnerable when you’re isolated from one another? How can you draw closer to others?

Dear God, please help me commit to being in community and extending Your love.

오늘의 말씀

02/23/2024     금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7-8; 마가복음 4:21-41
찬송가: 498(통275)

나그네를 대접하라

다니엘 네이에리는 ‘모든 슬픈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박해를 피해 난민 캠프를 거쳐 미국으로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겪었던 끔찍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어느 한 노부부가 그들을 후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다니엘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게 믿어집니까? 그분들은 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후원했습니다. 우리를 만난 적도 없고, 우리가 혹 나쁜 사람들이었다면 그 대가를 다 치러야 했을텐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고 친절한 분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정도까지 관심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국인을 잘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류민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레위기 19:34). 하나님은 우리 같은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한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에베소서 2:12)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또 전에 외국인이었던 우리 모두에게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히브리서 13:2, 현대인의 성경)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게 된 다니엘은 “너무나도 그리스도인답게 난민 가족을 집에 데려다 살 집을 구할 때까지 함께 살게 해 준” 짐과 진 도슨 부부를 칭송합니다. 이방인을 환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성구

에베소서 2:11-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2:19]

당신에게 있어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 당신의 공간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사랑해야 할 이방인을 보여주소서.

Daily Article

02/23/2024     FRI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7–8; MARK 4:21–41
Hymn: 498(OLD275)

WELCOME THE STRANGER

In Everything Sad Is Untrue, Daniel Nayeri describes his harrowing flight with his mother and sister from persecution through a refugee camp to safety in the United States. An elderly couple agreed to sponsor them, though they didn’t know them. Years later, Daniel still can’t get over it. He writes, “Can you believe that? Totally blind, they did that. They’d never even met us. And if we turned out to be villains, they’d have to pay for it. That’s almost as brave, kind, and reckless as I can think of anybody being.”

Yet God desires us to have that level of concern for others. He told Israel to be kind to foreigners. “Love them as yourself, for you were foreigners in Egypt” (LEVITICUS 19:34). He reminds gentile believers in Jesus—that’s many of us—that once we “were separate from Christ . . . and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without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EPHESIANS 2:12). So He commands all of us former foreigners, both Jew and gentile, “to show hospitality to strangers” (HEBREWS 13:2).

Now grown up with a family of his own, Daniel praises Jim and Jean Dawson, “who were so Christian that they let a family of refugees come live with them until they could find a home.” God welcomes the stranger and urges us to welcome them too. - MIKE WITTMER

Today's Reading

EPHESIANS 2:11–22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strangers, but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and also members of his household. [ EPHESIANS 2:19 ]

Who is an outsider in your world? How might you reach out and welcome them into your space?

Dear Jesus, show me the stranger You want me to love.

오늘의 말씀

02/22/2024     목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4-6; 마가복음 4:1-20
찬송가: 196(통174)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

왕족의 입장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항만노동자 겸 간호사의 딸인 안젤라 켈리는 그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안젤라는 작고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마지막 20년 동안 공식 의상 담당이었습니다.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나이 많은 여왕의 새 신발을 신고 궁전 뜰 안을 걸어 신발을 길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이든 여인이 예식에 참석해 때로는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고충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여왕과 같은 크기의 신발을 신었던 켈리는 이렇게 해서 여왕의 불편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돌보는 켈리의 섬세한 손길은 골로새(현재 튀르키예의 한 지역) 교회에 보낸 바울의 따뜻한 격려를 생각나게 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골로새서 3:12). 우리 삶이 예수님 위에 “세움을 받을”(2:7) 때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3:12, 현대인의 성경)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을”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9-10절).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사랑하고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13-14절).

우리 주위에는 매일 겪는 삶의 어려움들을 “그들의 입장이 되어” 함께 아파해야 할 사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언제나 우리를 보고 함께 아파하시는 왕이신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구

골로새서 3:8-17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로새서 3:12]

하나님은 당신을 어떻게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오늘 누구에게 그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신 것 다 받아들이고 또 나눌 수 있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22/2024     THURS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4–6; MARK 4:1–20
Hymn: 196(OLD174)

WALKING IN JESUS’ SHOES

What would it be like to walk in the shoes of royalty? Angela Kelly, the daughter of a dockworker and nurse, knows. She was also the official dresser for the late Queen Elizabeth for the last two decades of the monarch’s life. One of her responsibilities was to break-in the aging Queen’s new shoes by walking in them around the palace grounds. There was a reason for it: compassion for an elderly woman who sometimes was required to stand for extended periods at ceremonies. Because they wore the same shoe size, Kelly was able to save her some discomfort.

Kelly’s personal touch in her care for Queen Elizabeth makes me think of Paul’s warm encouragement to the church in Colossae (an area in modern Turkey):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COLOSSIANS 3:12). When our lives are “built on” Jesus (2:7 NLT), we become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3:12). He helps us take off our “old self” and “put on the new self” (VV. 9–10)—living out the identity of those who love and forgive others because God has loved and forgiven us (VV. 13–14).

All around us are those who need us to “walk in their shoes” and have compassion for them in the day-to-day challenges of life. When we do, we walk in the shoes (or the sandals) of a king—Jesus—who always has compassion for us. - JAMES BANKS

Today's Reading

COLOSSIANS 3:8–17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 COLOSSIANS 3:12 ]

How has God had compassion for you? Who can you show His love to today?

Thank You, Jesus, for Your forgiveness and love. Help me to receive it, and also to give it away.

오늘의 말씀

02/21/2024     수요일

성경읽기: 민수기 1-3: 마가복음 3
찬송가: 535(통325)

하나님의 열린 문

대도시 근교의 새 학교로 전학 왔을 때 상담 선생님은 나를 한번 보고는 영어 작문을 제일 못하는 아이들 반에 배정하였습니다. 전에 도심에 있던 학교에서는 시험 점수도 높았고 성적도 뛰어났으며 작문으로 교장 선생님 상도 받고 새 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이 내가 뭔가 맞질 않거나 준비가 안 됐다는 판정을 내리면서 새 학교에서는 “최우수” 작문 반에 들어가는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옛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그런 억울한 경우를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작고 변변치 않았던 그 교회가 있던 도시는 당시 수년간 지진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거기에다 사탄의 방해까지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3:9). 그렇게 무시 받던 교회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어 능히 닫을 사람이 없게”(8절) 하셨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예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7절) 그런 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섬김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들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글을 쓰는 나에게 하나님은 정말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학교 상담 선생님은 문을 닫았지만 하나님은 문을 열어 세계의 청중에게 다가가게 하신 것입니다. 닫힌 문이 당신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문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0:9). 예수님이 열어 주시는 문으로 들어가 주님을 따라갑시다.

오늘의 성구

요한계시록 3:7-11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요한계시록 3:8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문을 열어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의 사역과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저에게 문이 닫힐 때 거룩한 문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 말씀하시는 방향과 방법을 따라가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21/2024     WEDNESDAY

The Bible in One Year: NUMBERS 1–3; MARK 3
Hymn: 535(OLD325)

GOD’S OPEN DOORS

At my new school near a large city, the guidance counselor took one look at me and placed me in the lowest performing English composition class. I’d arrived from my inner-city school with outstanding test scores, excellent grades, and even a principal’s award for my writing. The door to the “best” writing class in my new school was closed to me, however, when the counselor decided I wasn’t right or ready.

The church in ancient Philadelphia would’ve understood such arbitrary setbacks. A small and humble church, its city had suffered earthquakes in recent years that left lasting damage. Additionally, they faced satanic opposition (REVELATION 3:9). Such a disregarded church had “little strength, yet,” as the risen Jesus noted, “you have kept my word and have not denied my name” (V. 8). Therefore, God placed before them “an open door that no one can shut” (V. 8). Indeed, “what he opens no one can shut, and what he shuts no one can open” (V. 7).

That’s true for our ministry efforts. Some doors don’t open. With my writing for God, however, He has indeed opened doors, allowing it to reach a global audience, regardless of one counselor’s closed attitudes. Closed doors won’t hinder you either. “I am the door,” Jesus said (JOHN 10:9 KJV). Let’s enter the doors He opens and follow Him. - PATRICIA RAYBON

Today's Reading

REVEL ATION 3:7–11
See, I have placed before you an open door. [ REVELATION 3:8 ]

What doors has God opened for you? How does your ministry and life flourish when you wait for His openings?

When doors close to me, dear God, may I turn to You, the Holy Door, and walk where and how You say to go.

오늘의 말씀

02/20/2024     화요일

성경읽기: 레위기 26-27; 마가복음 2
찬송가: 363(통479)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목적

영국은 역사의 나라입니다. 어디를 가든 역사적인 인물을 기리거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기념하는 현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영국인의 유머 감각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은 현판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샌드위치시에 있는 한 숙박집의 오래된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장소에서 1782년 9월 5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

우리는 기도를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여겨질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제목을 가져가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도 그런 실망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편 13:1). 우리도 그와 같은 생각을 쉽게 품을 수 있습니다. ‘주여, 얼마나 기다려야 응답해 주실 건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지혜뿐 아니라 때에 있어서도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절). 전도서 3장 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상기시켜 줍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적절하다” 또는 “기쁨의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때에 기도에 응답하시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분의 지혜가 담긴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그것이 옳고 선하고 아름다울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구

시편 13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시편 13:1]

무언가를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기다리는 그 시간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로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20/2024     TUESDAY

The Bible in One Year: LEVITICUS 26–27; MARK 2
Hymn: 363(OLD479)

GOD’S WISE PURPOSES

The United Kingdom brims with history. Everywhere you go, you see plaques honoring historic figures or commemorat- ing sites where important events occurred. But one such sign exemplifies the droll British sense of humor. On a weathered plaque outside a bed and breakfast in Sandwich, England, a message reads, “On this site, Sept. 5, 1782, nothing happened.”

Sometimes it seems to us that nothing is happening regarding our prayers. We pray and pray, bringing our petitions to our Father with expectation that He’ll respond—right now. The psalmist David expressed such frustration when he prayed, “How long, Lord? Will you forget me forever? How long will you hide your face from me?” (PSALM 13:1). We can easily echo those same thoughts: How long, Lord, before you respond?

However, our God is not only perfect in His wisdom but also in His timing. David was able to say, “I trust in your unfailing love; my heart rejoices in your salvation” (V. 5). Ecclesiastes 3:11 reminds us, “[God]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The word beautiful means “appropriate” or “a source of delight.” God may not always respond to our prayers when we’d like Him to, but He’s always working out His wise purposes. We can take heart that when He does answer, it will be right and good and beautiful. - BILL CROWDER

Today's Reading

PSALM 13
How long, Lord? Will you forget me forever? [ PSALM 13:1 ]

When have you prayed for something and felt that perhaps God was ignoring your requests? What lesson might you have learned in that time of waiting?

Loving God, please help me to learn a patience in prayer borne of trust in You.

P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