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Bread Detail Page - 오늘의 양식 내용
오늘의 말씀
02/06/2019 수요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랑
감사하게도 성도들이 다가와 우리 가 족 을 위 해 기 도 해 주 었 고 , 기도와 성경읽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라가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과 성도들의 사랑으로 나는 변화되었습니다.
첫 예배에 참석한 지 2년이 지나, 나는 알랜과 자비어와 같이 세례를 받겠다고 신청했습니다. 얼마 후 매주 나누는 대화 가운데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 달라졌구나.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렴.” 몇 달 후 어머니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사울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가장 두려운 교회 박해자였습니다(사도행전 9:1-5). 사람들이 사울을 도와 예수님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해주었습니다(17-19절). 사울의 급격한 변화는 성령의 권능으로 가르치는 그의 가르침에 신뢰를 더해주었습니다(20-22절).
우리의 예수님과의 첫 인격적인 만남은 사울의 경우처럼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삶의 변화도 그렇게 빠르고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기회를 얻게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사도행전 9:1-22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9:20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된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줄 가치가 있다.
Daily Article
02/06/2019 WEDNESDAY
Love Changes Us
Thankfully, believers reached out, prayed for our family, and taught me how to nurture a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 prayer and Bible reading. Over time, the love of Christ and His followers changed me.
Two years after that first church service, Alan, Xavier, and I asked to be baptized. Sometime later, during one of our weekly conversations, my mom said, “You’re different. Tell me more about Jesus.” A few months passed and she too accepted Christ as her Savior.
Jesus transforms lives . . . lives like Saul’s, one of the most feared persecutors of the church until his encounter with Christ (ACTS 9:1–5). Others helped Saul learn more about Jesus
(VV 17–19). His drastic transformation added to the credibility of his Spirit-empowered teaching (VV 20–22).
Our first personal encounter with Jesus may not be as dramatic as Saul’s. Our life transformation may not be as quick or drastic. Still, as people notice how Christ’s love is changing us over time, we’ll have opportunities to tell others what He did for us. - XOCHITL DIXON
Today's Reading
Acts 9:1–22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cts 9:20
.
A life changed by Christ’s love is worth talking about.
오늘의 말씀
02/05/2019 화요일
마음의 이동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 국가 전체가 하나님 임재의 표시인 구름에 이끌려 새로이 거할 땅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이동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반복되는 것을 읽다보면 한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거대한 부족은 계속해서 그들 자신의 짐 뿐 아니라, 장막과 구름 속에 계신 하나님이 모세와 만났던 성막의 가구들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습니다(출애굽기 25:22 참조).
오랜 세월이 지나 예수님이 이 이스라엘의 이동에 관한 이야기에 보다 완전한 의미를 부여하시게 됩니다. 구름으로 인도하지 않고 예수님이 직접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따라오라”(마태복음 4:19)고
말씀하심으로 가장 중요한 주소 이전은 마음 안의 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적들을 모두다 로마의 십자가 밑으로 인도하심으로 구름과 성소에
머무르시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멀리까지 가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주소를 바꾸는 것처럼 마음의 이동도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집의 창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해주셨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민수기 9:15-23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민수기 9:17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함으로 어떤 불안정이 있었습니까? 그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강하게 하는데 기도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주님,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지 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이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05/2019 TUESDAY
Moves of the Heart
During Israel’s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the cloud of God’s presence led a whole family nation to make one move after another in anticipation of a new homeland. The account is so repetitious, it reads almost like a comedy. Over and over the huge family packed and unpacked not only its own belongings but also the tent and furnishings of the tabernacle, where the God of the cloud met with Moses (SEE EXODUS 25:22).
Many years later, Jesus would give fuller meaning to the story of Israel’s moving days. Instead of leading from a cloud, He came in person. When He said, “Follow me” (MATTHEW 4:19), He began showing that the most important changes of address happen on roads of the heart. By leading both friends and enemies to the foot of a Roman cross, He showed how far the God of the cloud and tabernacle would go to rescue us.
Like changes of address, such moves of the heart are unsettling. But someday, from a window in our Father’s house, we’ll see that Jesus led us all the way. - MART DEHAAN
Today's Reading
Numbers 9:15–23Whenever the cloud lifted from the tent, the Israelites set out; wherever the cloud settled, the Israelites encamped.
Numbers 9:17
In what ways does choosing to follow God unsettle you? How might prayer help to strengthen your faith and trust in Him?
Lord, You know how much we don’t like to move. But we want to follow You. Please help us to go wherever Your love leads today.
오늘의 말씀
02/04/2019 월요일
오직 내가 볼 수 있는 것
너무나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촌 요한은 그의 초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의 위치나 사명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향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와 그의 제자들을 향해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31절) 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28-30).
우리 삶의 중심점이 예수님이 되고, 온 마음 다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성구
요한복음 3:22-35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가장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주님은 내가 누구를 사랑하기를 원하실까?
주님, 저 자신과 저의 필요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04/2019 MONDAY
All I Can See
Jesus’s cousin John clearly knew his focus wasn’t himself. Right from the start he recognized that his position or calling was to point others to Jesus, the Son of God. “Look, the Lamb of God!” he said when he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his followers (JOHN 1:29). He continued, “The reason I came baptizing with water was that he might be revealed” (V 31). When John’s disciples later reported that Jesus was gaining followers, John said, “You yourselves can testify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am sent ahead of him.’ . . .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3:28–30).
May the central focus of our lives be Jesus and loving Him with our whole heart. - ANNE CETAS
Today's Reading
John 3:22–35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John 3:30
How can I love Jesus best? Who might He want me to love?
Lord, I often get centered on myself and my needs and wants. Help me to look outside of myself to You.
오늘의 말씀
02/03/2019 주일
들으라고 만든 귀
그런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배역을 실감나게 해낼 수 있을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의를 받아들인 그녀는 연기를 준비하기 위해 극심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나눌 때 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처럼 그녀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듣기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의 입장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귀를 사용함으로써 알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선지자는 주저 없이 그들을 “어리석고 지각이 없는 백성” (예레미야 5:21)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랑과 교훈, 격려, 경고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배우고 성숙해지기를 바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렇게 되라고 귀와 같은 도구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듣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예레미야 5:18-23어리석고 지각이 없으 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예레미야 5:2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고집을 용서하시고,
제 귀를 열어 듣게 하소서.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의 귀가 믿음의 성숙을 돕는다.
Daily Article
02/03/2019 SUNDAY
Ears Were Made for Listening
Initially she offered suggestions and thoughts when those in the group shared their stories. She, like most of us, wanted to be helpful. But gradually she stopped talking, and simply started listening. It was only then she began truly learning to walk a mile in their shoes. And her realization came by using her ears.
Jeremiah’s indictment against the people was that they refused to use their “ears” to hear the Lord’s voice. The prophet did not mince words, calling them “foolish and senseless people” (JEREMIAH 5:21). God is constantly at work in our lives communicating words of love, instruction, encouragement, and caution. The Father’s desire is that you and I learn and mature, and we have each been given the tools, such as ears, to do so. The question then is, will we use them to hear the heart of our Father? - JOHN BLASE
Today's Reading
Jeremiah 5:18–23Hear this, you foolish and senseless people, who have eyes but do not see, who have ears but do not hear.
Jeremiah 5:21
Father, I believe You are always speaking. Forgive my stubborn tendency to think I have all the answers. Open my ears that I may hear.
Our ears can help us mature in our faith, if we’ll listen.
오늘의 말씀
02/02/2019 토요일
회복됨
구약성경의 요엘 선지자는 온 유다 민족이 불순종한 결과로 유사한 곤충 떼가 유다 나라 전체를 파괴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전 세대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메뚜기 떼가(일부 성경학자들은 외국군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봄) 침범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요엘 1:2). 메뚜기들은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훼손하고 사람들을 기근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죄의 길에서 돌아서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메뚜기가 먹은 햇수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리니”(2:25)라고 요엘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곤충들처럼 우리의 죄악들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정해 두신 풍성하고 향기로운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향하여 과거에 잘못 선택했던 것들에서 돌아설 때, 주님은 우리의 수치를 제거해주시고 주님 안에서의 풍성한 삶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오늘의 성구
요엘 2:18-27먹은 햇수대로 너희에 게 갚아 주리니
요엘 2:25
오늘 하나님께 어떤 용서를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시킨다.
Daily Article
02/02/2019 SATURDAY
Restored
The Old Testament prophet Joel described a horde of similar insects ravaging the entire nation of Judah as a consequence for their collective disobedience. He foretold an invasion of locusts (a metaphor for a foreign army, in the minds of some Bible scholars) like nothing previous generations had seen (JOEL 1:2). The locusts would lay waste to everything in their path, driving the people into famine and poverty. If, however, the people would turn from their sinful ways and ask God for forgiveness, Joel says the Lord would “repay [them] for the years the locusts have eaten” (2:25).
We too can learn from Judah’s lesson: like insects, our wrongdoings eat away at the fruitful, fragrant life God intended for us. When we turn toward Him, and away from our past choices, He promises to remove our shame and restore us to an abundant life in Him. KIRSTEN HOLMBERG
Today's Reading
Joel 2:18–27I will repay you for the years the locusts have eaten.
Joel 2:25
What can you ask God’s forgiveness for today?
God’s love restores.
오늘의 말씀
02/01/2019 금요일
더 깊은 사랑
인정하고 그를 용서하기로 한 링컨은 나중에 그를 남북전쟁 때 중요한 정부각료로 임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스탠튼은 점차 링컨을 친구로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했을 때 링컨의 침상 옆에 앉아 밤을 새우고, 운명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이제 그는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다”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던 사람이 바로 스탠튼이었습니다.
화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일과(누가복음 22:54-62),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를 생각하며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셨던 깊은 사랑으로 우리는 죄의 빚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골로새서 1:19-20).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께 도움을 청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용서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도 용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분과 함께 아름답고 새로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힘을 주십니다.
오늘의 성구
베드로전서 4:7-11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 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
하나님처럼 용서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오스왈드 챔버스
Daily Article
02/01/2019 FRIDAY
Deeper Love
Reconciliation is a beautiful thing. The apostle Peter pointed followers of Jesus there when he wrote,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1 PETER 4:8). Peter’s words cause me to wonder if he was thinking of his own denial of Jesus (LUKE 22:54–62) and the forgiveness Jesus offered him (and us) through the cross.
The deep love Jesus demonstrated through His death on the cross frees us from the debt for our sins and opens the way for our reconciliation with God (COLOSSIANS 1:19–20). His forgiveness empowers us to forgive others as we realize we can’t forgive in our own strength and ask Him to help us. When we love others because our Savior loves them and forgive because He has forgiven us, God gives us strength to let go of the past and walk forward with Him into beautiful new places of grace. - JAMES BANKS
Today's Reading
1 Peter 4:7–11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8
.
The forgiveness of God is the test by which I myself am judged.
OSWALD CHAMBERS
오늘의 말씀
01/31/2019 목요일
양자됨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경험했을 테니까요. 하나님이 단순히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요한복음 3:16) 하실 정도로만 우리를 사랑하셨다 해도 우리는 불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갈라디아서 4:4-5)는데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 당시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요점은 지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똑같이 유산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진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7절).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는’ 것만 바라시지 않고 바로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아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아들이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을 주시며(요한계시록 3:12),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보란 듯이 불러주십니다. 당신은 이보다 더 권위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단지 하나님의 축복만 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오늘의 성구
갈라디아서 4:1-7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사......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4-5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렇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다니요! 저를 구원하시고 저를 원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을 뿐 아니라 사랑 받고 있다.
Daily Article
01/31/2019 Thursday
Adopted
If you’re a child of God you already know, because it’s happened to you. We couldn’t complain if God had merely loved us enough to send His Son that we might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It would be enough for us. But not for God. He “sent his Son . . . to redeem” us, not as an end in itself, but “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to sonship” (GALATIANS 4:4–5).
The apostle Paul refers to us as “sons” because in his day it was common for sons to inherit their father’s wealth. His point is that now everyone who puts their faith in Jesus, whether man or woman, becomes a “son” of God with equal and full rights of inheritance (V 7).
God does not merely want to save you. He wants you. He has adopted you into His family, given you His name (REVELATION 3:12), and proudly calls you His child. You could not possibly be loved more, or by anyone more important. You aren’t merely blessed by God. You are the child of God. Your Father loves you. - MIKE WITTMER
Today's Reading
Galatians 4:1–7God sent his Son...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to sonship.
Galatians 4:4-5
Father, what a privilege to call You this! Thank You for saving me, and for wanting me.
You are more than saved. You are loved.
오늘의 말씀
01/30/2019 수요일
조류와 규조류
하나님의 창조와 사역은 끝날 줄을 모릅니다. 욥기를 보면 욥의 친구 엘리후가 모두를 잃어버린 욥이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 점을 지적합니다. 엘리후는 친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욥기 37:14-16). 인간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이 지으신 창조물의 복잡성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피조물들까지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냅니다. 그분의 영광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든지, 비록 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때라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헤아릴 수 없이 큰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없이 행하시는”(욥기 5:9) 하나님을 지금 찬양합시다.
오늘의 성구
욥기 37:14-24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욥기 37:14
주님, 피조물들을 세밀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우리가 보지 못할 때조차도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고 계신다.
Daily Article
01/30/2019 Wednesday
Algae and Diatoms
God’s creation and works are endless. In the book of Job, one of Job’s friends, Elihu, points this out to Job as he struggles through his loss. Elihu challenges his friend, “Listen to this, Job; stop
and consider God’s wonders. Do you know how God controls the clouds and makes his lightning flash? Do you know how the clouds hang poised, those wonders of him who has perfect knowledge?” (JOB 37:14–16). We, as humans, can’t begin to understand the complexity of God and His creation.
Even the parts of creation we can’t see reflect God’s glory and power. His glory surrounds us. No matter what we’re going through, God is working, even when we can’t see it and don’t understand. Let’s praise Him today, for “He performs wonders that cannot be fathomed, miracles that cannot be counted” (JOB 5:9). - JULIE SCHWAB
Today's Reading
READING Job 37:14–24Stop and consider God's wonders.
Job 37:14
Lord, thank You for the detail You put into creation and for being at work even when we can’t see it.
God is always working.
오늘의 말씀
01/29/2019 화요일
하늘을 가르시고
이스라엘도 이런 상황을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이스라엘을 함락하여 철권으로 그들을 쳐부수고 예루살렘을 연기 자욱한 잔해의 도시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의 암울한 의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이사야 63:11-15) 그리고 나서 정확히 바로 이 지점에서 이사야는 담대히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기를”(64:1) 기도했습니다. 고통과 슬픔에 쌓인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의심이나 어려움은 뜻밖의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지금 놀랍고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을 ‘확실히’ 가르시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찢기고 부서진 몸을 내어주시면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오늘의 성구
이사야 64:1-8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이사야 64:1
하나님, 제 삶을 제가 관리하여 답을 얻을 수 있는 척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말해야 할 어떤 질문이나 의심이 있습니까?
Daily Article
01/29/2019 Tuesday
Rip the Heavens
Israel knew this terrain well. The Babylonian Empire overwhelmed Israel, crushing them with an iron fist and turning Jerusalem into smoldering rubble. The prophet Isaiah put words to the people’s dark doubt: Where is the God who’s supposed to rescue us? (ISAIAH 63:11–15). And yet from precisely this place, Isaiah offered a bold prayer: God, “rend the heavens and come down” (64:1). Isaiah’s pain and sorrow drove him not to pull away from God, but to seek to draw closer to Him.
Our doubts and troubles offer a strange gift: they reveal how lost we are and how much we need God to move toward us. We see now the remarkable, improbable story. In Jesus, God did rip the heavens and come to us. Christ surrendered His own ripped and broken body so that He could overwhelm us with His love. In Jesus, God is very near. - WINN COLLIER
Today's Reading
Isaiah 64:1–8Oh, that you would rend the heavens and come down.
Isaiah 64:1
God, I like to pretend I can manage my life, that I can arrive at the answer. But I can’t. I need You. Would You rip the heavens and come down?
What questions or doubts do you have to talk with God about?
오늘의 말씀
01/28/2019 월요일
기분을 바꾸어주는 것
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글로 적어서 나의 슬픔을 드리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수첩에 나의 불평들을 모두 빠짐없이 적고 나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저장되어 있는 찬양을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이었던 나의 기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시편 94편 기자의 패턴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먼저 자신의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시편 94:2,16). 이 시편 기자는 과부와 고아들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일들을 하나님께 거침 없이 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단 하나님께 한탄을 쏟아낸 후, 시편 내용은 주를 향한 찬양으로 옮겨갑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22절).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그분께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과 슬픔, 무력감을 찬양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오늘의 성구
시편 94:2, 16-23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편 94:19
주님, 제 마음을 주님께 쏟아놓습니다. 제 아픔과 분노를 취하시고, 주님의 평안을 제게 내려주소서.
찬양에는 우리의 가장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능력이 있다.
Daily Article
01/28/2019 Monday
The Mood Mender
On the train, another thought came to mind: write a note to God, giving Him my lament. Soon after I finished pouring out my complaints in my journal, I pulled out my phone and listened to the praise songs in my library. Before I knew it, my bad mood had completely changed.
Little did I know that I was following a pattern set by the writer of Psalm 94. The psalmist first poured out his complaints: “Rise up, Judge of the earth; pay back to the proud what they deserve. . . . Who will rise up for me against the wicked? Who will take a stand for me against evildoers?” (PSALM 94:2, 16 ) He didn’t hold anything back as he talked to God about injustice done to widows and orphans. Once he’d made his lament to God, the psalm transitioned into praise: “But the LORD has become my fortress, and my God the rock in whom I take refuge” (V 22).
God invites us to take our laments to Him. He can turn our fear, sadness, and helplessness into praise. LINDA WASHINGTON
Today's Reading
Psalm 94:2, 16–23When anxiety was great within me, your consolation brought me joy.
Psalm 94:19
Lord, I pour out my heart to You. Take my hurts and my anger, and grant me Your peace.
Praise has the power to lighten our heaviest burden.